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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나는∼’이라고 말하지 않아도(7)

지난 2018년 어느 대학에서 몇 년 만에 한 학기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3∼4학년이 수강할 수 있는 ‘스페셜토픽’이라는 과목이었는데 설강과목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야말로 유연하고 탄력적인 강의였습니다. 미디어의 이해? 미디어리터러시? 콘텐츠 기획?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연관 지어 이런 저런 강의주제를 생각하다 마침내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 글쓰기를 가르치자. 지금까지 있던 그런 국어문법 강의 말고 언론과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나의 노하우를 남김없이 전해줄 수 있는 그런 글쓰기 강의. 결국 ‘미디어시사글쓰기’라는 강의를 개설했습니다.

 

첫날, 수강신청을 한 20명 남짓한 학생들이 1시간 시간을 주고 직접 글을 써보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의 글 실력을 알아야 강의의 수준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기왕에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강의를 하겠노라고 마음을 먹은 만큼 학생들의 수준에 철저히 맞춰 눈높이 강의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켜놓고 편하게 쓰세요. 말하자면 오픈 북 테스트입니다. 학생들은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로 있는 실력, 없는 재주 다 끌어내 문장을 만들고, 지우고, 만들고, 지우고를 되풀이했습니다. 이윽고 ‘땡’하고 종을 쳤는데도 몇몇 학생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제 눈만 쳐다볼 뿐 손에 쥔 답안지를 흔쾌히 내어놓질 못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 마음 다 알아. 뭐 어때. 테스트일 뿐인데.

 

아뿔싸, 이미 성인이 된 대학 3·4학년 학생들이 쓴 문장과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쓴 문장에서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사안을 들여다봤다.”, “나는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절반 이상 학생들의 글에서 ‘나는∼“이라는 표현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쓴 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나는∼”이라는 그 표현을 접하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말했죠. “이제부터 여러분의 문장에서 ‘나는∼’은 없습니다. 쓰지 마세요. 여러분이 초등학생입니까? ‘나는∼’은 초등학생 때 일기장에서나 쓰는 말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사전에 ‘나는∼’은 없습니다.”

 

학기가 끝나고 어김없이 강의평가가 실시됩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유익한 강의”였고,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강의”였다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옥에 티, 이런 항의성 평가도 있었다고 하네요. “초등학생의 글과 비교해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글에서 ‘나는∼’을 과감하게 빼버려야 합니다. 쓰지 않아야 합니다. 굳이 ‘나는∼’이라고 쓰지 않아도 읽은 이들은 그 글이 여러분의 생각, 의지, 신념, 결의, 고민, 염려, 희망, 기대, 기쁨, 그리고 슬픔에 관한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쓰지 않아도 될 말을 쓰는 건 낭비일 뿐만 아니라 글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무미건조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이 쓰는 글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겁니다. 이제 여러분의 글에서 ‘나는∼’은 영원히 추방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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