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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오묘한 서술어의 세계 (4)

한국어는 서술어의 언어

영어는 주어의 언어이고, 한국어는 서술어의 언어입니다. 영어에선 ‘I’ ‘We’ ‘They’ ‘This’와 같은 주어를 빠뜨리면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말에선 자주 생략됩니다. 대신 서술어가 절대적입니다. 감탄문 외의 글에서 동사와 형용사 같은 서술어를 빠뜨리면 문장이 되질 않습니다. 앞 장에서 말씀드린 “착한데 맛있다.”을 기억해보세요. 주어는 보이질 않지만 서술어만으로도 충분히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서술어의 다양함과 오묘함

서술어의 다양함과 오묘함은 우리말과 글의 빼어난 특성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같은 뜻이라도 문장의 뉘앙스에 따라 얼마든지 바꿔 쓸 수 있는 서술어들이 있습니다. ‘뛰다’라는 말을 ‘달리다’ ‘달음박질치다’ ‘쫓다’ ‘질주하다’ ‘냅다 달리다’ ‘내처달리다’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는 거죠. 표현하려는 대상의 동작이나 상태, 그리고 느낌의 변화에 따라 서술어를 얼마든지 바꿔 쓸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 같은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도 쓰입니다. ‘뛰다’는 기본적으로 발을 몹시 재게 움직여 빨리 나아가는 동작을 뜻합니다. 그런데 어떤 자격으로 일하는 상태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는 내년부터 메이저리그 현역으로 뛰게 됐다.”고 할 경우입니다. 맥박이나 심장이 벌떡벌떡 움직이는 것도 ‘뛰다’로 표현합니다. “놀라서 심장이 막 뛰었다.”와 같은 표현입니다. 순서 따위를 거르거나 넘기는 것 역시 ‘뛰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3등급에서 1등급으로 껑충 뛰었다.”와 같은 글에서 ‘뛰다’는 달리는 것을 의미하는 ‘뛰다’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처럼 보기에는 똑같은 서술어지만 문맥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획일화의 늪 탈출

이처럼 다양하고 오묘하며 변화무쌍한 언어적 특성을 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우리가 어찌된 일인 지 글만 쓰면 ‘획일화’ 또는 ‘단일화’의 늪에 빠져듭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서술어를 모조리 “~했다. ~했다. ~했다.”로 끝냅니다. “~ 됐다. ~됐다. ~됐다.”로 끝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다. ~이다. ~이다.”도 부지기수죠. 좀 더 심하면 죄다 “~것이다. ~것이다. ~것이다.”로 끝내기도 합니다. 물론 ‘∼이다’와 같은 서술어를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쓸 때가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내용을 강조하거나, 시의 운율처럼 글의 리듬을 살리거나, 문장의 멋을 한껏 부리는 경우입니다. 글을 잘 쓴다고 하는 이들이 종종 쓰는 기법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셔야 합니다. 글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을 때만 가능한 테크닉입니다. 함부로 사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품위있고 멋있는 글

우리말의 특성을 잘 살려야 좋은 문장이 됩니다. 다양한 서술어의 뜻과 미세한 느낌을 알고 있어야 섬세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서술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힘이 넘치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정확하면서도 품위 있고 멋있는 글, 길어도 지루하지 않고 따분하지 않은 글, 그런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했다’ ‘됐다’ ‘이다’ ‘것이다’를 골고루 잘 섞어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쫄깃쫄깃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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